* 문학/아침일기

늘어진 오후

文喆洙 2015. 10. 27. 10:25

늘어진 오후

 

 

 

좆빠졌다는 얘길 들은 적 있다

매우 힘든 일을 당했을 때나

고통스러운 상황을 만났을 때 종종

사내들은 그렇게 되뇌이곤 한다

 

한 때는 바닷속에서 갑질을 했을 만도 한

갑오징어가 좌판에 엎드려 있다

저보다 앞서 간 선배의 모습 그대로 

제 다리보다 훨씬 긴 생식관을

그야말로 축 늘어뜨린 오후

찬거리를 보러 나온 여인들 홀리고 있다

 

다행이 살아서 바다를 나온 것들은

수족관 안에서 다리  사이에 숨긴 채

마지막 유영을 즐기고 있는 것을 보니

죽음은 역시 좆빠질 일인데

서해의 노을이 쉬어가는 칠성판에

보호색을 띤 사람들 즐비하다

 

2015. 6. 13. 22:40

 

뻔한 것들이 눈에 뜨일 때가 있다

매일 보던 것이 특별하게 다가 올 때가 있다

대상이 바뀐 것이 아니라 내가 바뀌거나 내 상황이 바뀐 것이리라

 

두툼했던 갑오징어가 두께가 얇아지는 시절

리모델링 공사를 위하여 주차장으로 삶의 터를 옮기 사람들 분주한데

간이 테이블에 턱 고이고 지켜보다 갑오징어 한접시 주문한다

지나가던 상인들 소주 댓병 사오고 나는 노을보다 먼저 붉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