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시론, 기타

구재기 시집 "흔적"을 읽다

文喆洙 2016. 4. 2. 22:06

구재기 시집 "흔적"을 읽다

 

 

보았는가

 

             구재기

 

 

떠도는 구름이

몸의 무게를 버려

푸지게 내려주는

빗방울 보았는가

 

그 빗방울이

마른 땅을 적시고

하늘을 우러르는 푸나무로

바로 서는 걸 보았는가

 

진정한 사랑은

스스로를 낮추어서

무언가를 바로 세우는 것

바로 세워, 한 그루

교목으로 자라게  하는 것

 

누가 빗방울을

거스를 수 있으랴

고요하고 작은 목소리로

젖어들면서

 

무게를 버린 구름이

하늘의 문을 열어

온 세상 가득

내려놓은  햇살을 보았는가

 

[구재기 시집 '흔적'  2014년 대교현대시선79]

 

 

귀농협의회 일을 끝내려는데 꽃사진과 함께 카톡 한통 날아든다

"산애재에 봄이 시작 되었군요" 

언제나처럼 편안한 안부 톡을 받고 서천 문산면 지원리에서 불과 5분 거리인 시초면 시초로 선생님댁으로 향했다

 

환한 얼굴로 반갑게 맞아 주신 시간이 언젠가 싶지만 돌아나와야 하는 시간 "내가 시집을 줬던가?" 

받은 시집도 있고 안받은 시집도 있다고 말씀 드리니 초록이 짙은 '흔적'을 꺼내신다

그렇게 안고 온 시간이 벌써 한달을 넘겼으니 마음의 숙제가 자꾸 나를 쫒는다

마음보다 빠른 것이 시간인듯 하다

 

페이지를 무겁게 넘기면서 한 자 한 자 짚어나가다 아직 내 욕심의 미늘이 남아있는가 "진정한 사랑은 스스로를 낮추어서 무언가를 세우는 것"이라는 '보았는가'라는 시에서 호흡을 고른다

하지만 그 호흡은 오래가지 않았다

 

뒤이은 '혼자 되어'라는 시에서 "사랑은 철저한/ 혼자의 것 // 일체로부터 / 벗어난 자유"라고  목적을 가지지 않는 것이라신다

"무게를 버린 구름이 / 하늘의 문을 열어 / 온 세상 가득 / 내려놓은  햇살"처럼 목적 없는 사랑이 가능할 때 있었던가 싶다

 

봄비답지 않게 밤새 내리던 비도 그쳤는가

" 그 빗방울이 / 마른 땅을 적시고 / 하늘을 우러르는 푸나무로 / 바로" 섰는지 먼 들판이라도 바라봐야겠다

 

 나른한 객지의 오후 마저도 낯설지 않은 삶에 시집 몇 권이 항상 임무교대하며 동승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은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