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지 여성 에디터, 한국 남자의 스타일에 태클걸다! (2)
-내가 원하는, 내 남자의 옷장-
이 남자들을 어떻게 센스 있게 입혀야 할까요...?
한 남자와 오래 살다 보니, 남자의 옷장이 어떻게 구성돼야 좋을지 감이 잡힙니다. 내 남자는 샐러리맨은 아니어서 양복 입는 날이 거의 없습니다. 늘 편안한 캐주얼 차림입니다. 그런데 그 차림새가 항상 마음에 드는 건 아닙니다. 명색이 남성 패션 잡지에 근무하는 아내로, 캐주얼만 고집하는 내 남자의 옷장에 이런 옷들이 걸렸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그것도 자신의 비자금으로 알아서 마련하는 센스까지.
1. 고전적인 정장과 코트
그 놈의 수트가 항상 문제입니다. 결혼 때 해준 고운 양복은 비 오는 날 술 마시고 길에서 뒹굴어 못쓰게 되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내 남자나 나나 한 달에 한 번 입을까 말까한 양복에 미련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 제대로 된 수트 한 벌 마련하는 것이 커다란 숙제로 남았습니다.
캐주얼한 차림으로 생활하는 남자일수록 좋은 수트를 갖추는 건 필수입니다. ‘캐주얼한 차림으로도 사회 생활이 가능한데 뭣 하러 수트를 입겠나’ 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 고전적 정장이 필요하다는 건, 그만큼 그 남자의 일생에 중요한 순간이 닥쳤다는 뜻입니다. 남편은 늘 티셔츠 차림으로 출근을 합니다. 이맘때면 반바지에 샌들을 신습니다. 어느 날 ‘나, 내일 양복입어야 해’ 라고 말할 때가 있습니다. 그건 중요한 입찰에 참여한다는 뜻이거나 상대 회사의 결정권자를 만나 담판을 벌인다는 뜻입니다. 어쩌다 한 번 입는 옷이기에, 투자하는 셈 치고 좋은 걸 마련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내 남자의 옷장에 핏이 잘 맞아떨어지는 이탤리언 맞춤 수트를 넣어주고 싶습니다. 그와 동시에 오랫동안 클래식하게 입을 수 있는 정통 수트 한 벌도 마련해주고 싶고요. 이 두 가지 수트만 있다면 앞으로 남은 여생, 보란 듯이 떵떵거리고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최고급 면 소재의 맞춤 셔츠 다수
지금 다니는 건물로 이사 오면서 회사 엘리베이터에 탄 남자들의 옷을 유심히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비교적 대기업에 속하는 회사가 들어서 있는 터라 남자들이 많은데요. 항상 와이셔츠에서 걸립니다. 겉옷을 벗고 다니니 눈에 띄는 것은 와이셔츠뿐이라,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림질 문제가 아닙니다. 소재가 문제입니다. 풀 먹인 듯 빳빳하게 힘 받는 와이셔츠를 발견하기가 왜 이다지도 힘이 듭니까. 벙벙한 품은 예사고, 링클 프리 류의 힘없이 늘어지는 셔츠를 발견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남편의 손을 붙들고 백화점의 맞춤 셔츠 코너를 찾았습니다. 수입 브랜드의 셔츠 가격과 별반 차이나지 않더군요. 15만원에서 20만원 선. 저로서는 무리가 되는 거금이었지만, 큰 맘 먹은 터라 물러설 수 없었습니다. 국내 브랜드였지만 질 좋은 소재를 구비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거미 인간’ 체형인 남편의 몸 치수를 재서 몸에 꼭 맞게 만들어주니 벙벙한 곳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림질 할 때마다 빳빳하게 힘을 받으니 다리는 쪽에서도 기분이 좋습니다. 이니셜 새긴 소매단을 보며 뿌듯해하기도 합니다. 바라건대는 다양한 모양과 컬러로, 같은 셔츠를 세 벌쯤 마련해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3, ‘진짜’ 청바지
제대로 된 청바지를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내 남자는 거의 매일 같은 청바지만 입습니다. 금새 너덜너널해지는 바짓단을 바라볼 때면, 또 몸에 잘 맞는 청바지를 찾아 헤맬 생각에 한숨부터 나옵니다. 청바지는, 두말 하면 잔소리겠지만, 가장 경제적이고 가장 효율성 높은 옷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옷과도 잘 매치됩니다. 그런 만큼 몸에 잘 맞는 청바지를 구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내 남자의 청바지로 리바이스를 고집합니다. 외국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하는지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저는 이보다 더 맘에 드는 청바지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4. 캐시미어 스웨터 1~2장
내 남자는 자칭 ‘연한 피부의 소유자’입니다. 털이 북실거리는 어떤 종류의 옷도 사양합니다. 나 역시 억지로 입힌 후 목덜미가 발그스름하게 변하는 것을 본 후부터는, 털 스웨터 입히는 것을 포기했다. 그러나 추운 겨울에 포근한 스웨터에 가디건을 걸친 중후한 남자는 저만의 포기할 수 없는 ‘로망’이었습니다. 대안을 찾아야 했습니다. 최고급 소재로 만든 캐시미어는 그 값이 어마어마해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파격 세일가로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놀란 것은 그다음이었습니다. 질 좋은 캐시미어를 입어본 남편은 더 이상 털옷은 싫다는 얘기를 꺼내지 않습니다. 많이는 필요 없습니다. 한두 벌이면 족할 겁니다.
5. 벼룩시장용 로엔드 티셔츠부터 최고 품질의 하이엔드 티셔츠까지
다른 것은 몰라도 티셔츠 만큼은, 지금 옷장에도 차고 넘칠 정도로 많습니다. 각종 이니셜, 그림, 글자가 씌어진 옷부터 브이넥, 라운드 넥, 보트 넥 등 다양한 목선, 색상도 화이트, 블랙, 그레이, 네이비, 레드, 핑크, 그린 등등.
그런데 이렇게 많은 티셔츠 가운데 즐겨 입는 옷이라고는 고작 한 계절에 한두 벌입니다. 마음에 드는 티셔츠만 줄기차게 입어대는 것이죠. 심지어는 빨려고 넣어둔 빨래통에서 꺼내 입기도 합니다. 슬쩍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다른 티셔츠를 입어도 될 것을 굳이 그것만 고집하는 이유를 알지 못해 짐짓 모른 척합니다.
오래 같이 지내다보니 서서히 취향을 간파할 수 있었습니다. 내 남자는 등판에 커다랗게 로고나 영문자가 새겨진 티셔츠는 피합니다. 소재가 두꺼운 것도 피합니다. 비슷한 맥락이지만 무거운 옷도 피합니다. 그러고 보니 가벼운 소재, 흡수가 잘 되는 편안한 스타일로 그의 취향을 요약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티셔츠만으로도 얼마든지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낼 수 있는데, 그에게는 그런 제품이 없다는 것입니다. 값이 조금 비싸더라도, 톡톡한 면 소재의 화이트 라운드 넥 디자인의 티셔츠를 한 장 꼭 마련해주고 싶습니다. 제 용돈을 줄여서라도.
6. 그 밖의 필수품
몸에 잘 맞는 면바지: 베이지색 면바지는 요즘 같이 더운 날 필요합니다. 청바지는 어딘가 답답해 보이는 계절에는 어김없이 꺼내들 수 있어야 하니까요. 마 바지도 근사하지만, 그건 그걸 감당할 수 있는 멋쟁이들의 필수품입니다.
파티용 섹시 풀오버: 내 남자는 고리타분하게 살지만, 어쩌다 홍대 앞 클럽이나 강남의 바에 들르기도 하는 눈치입니다. 그 때를 대비해서 평소에는 절대 입을 것 같지 않은, 몸매를 드러내는 섹시한 풀오버 한 벌쯤은 옷장 안 어딘가에 걸려 있으면 합니다. 내 남자가 물 좋은 곳에서 타박 받는 건 저도 싫으니까요.
완벽한 검정 넥타이: 검정 넥타이는 필요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살다보니 의외로 완벽하게 검은색인 넥타이가 절실하게 필요해질 때가 있습니다. 관혼상제의 예를 갖출 때가 그렇습니다. 조복이 없으니 넥타이만이라도 제대로 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수의 질 좋은 넥타이 맨 아래에 윤기 나는 검정 넥타이가 하나 더해졌으면 합니다.
그 밖의 플러스 알파(+α): 사실 이게 뭐가 돼야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특별히 우아한 저녁을 위한 하이엔드(high-end) 제품'쯤으로 해두죠. ‘이 옷은 분명 굉장히 특별한 날을 위해 준비한 것이 틀림없어’ 하는 인상을 주는 아이템입니다. 자신의 장점이 잘 드러나는 옷이어야 하겠죠. 물론 이런 옷을 만나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쩌면 평생 가도 만나기 힘든 그런 종류의 옷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불현듯 찾아올지도 모를 그 날을 위해 내 남자의 옷장 한 켠을 비워두었으면 합니다. 결국 플러스 알파를 찾지 못해 고심하는 내 남자에게, 어느 날에는 제가 그 옷장에 들어가 한 마디 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당신 인생의 플러스 알파야!’
※ 김민정 차장은 여러 잡지를 두루 거쳐, 지금 남성지 <에스콰이어>의 피처팀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숱한 한국 남자들을 만나야 하는 그는, ‘한국 남성론’의 숨은 고수입니다. 한국 남자들의 스타일과 매너 등에 대해서 잔소리 하는 걸, 자신의 일만큼이나 좋아합니다.
'* 자료방 > 관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영어는 다이어트 같아요...인내하는자 만의 축복" (0) | 2010.08.03 |
---|---|
우리 역사 다시 보기 (0) | 2010.08.03 |
[스크랩] 한국 남자들의 9대 스타일 범죄(style crime) (0) | 2010.07.30 |
[스크랩] "죽을 고생해서 살려냈는데...이제 죽으라고요?" (0) | 2010.07.29 |
21세기 첫 10년,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책은? / 오마이뉴스 (0) | 2010.07.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