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내일을 가다]“눈앞 이득보다 미래의 국익 눈돌려야”
ㆍ최영진 유엔사무총장 특별대표
코트디부아르 수도 아비장에는 유엔평화유지사령부(ONUCI)가 있다. 2002년 남북 간 분쟁이 일어나 유엔 평화유지군 1만명이 파병돼 지금까지 주둔하고 있다. 반군의 무장해제와 차기 정부를 뽑는 선거관리를 비롯해, 정부가 하지 못하는 구호·재건사업을 실시하는 것이 모두 onUCI의 일이다.
ONUCI를 이끄는 최고 책임자는 한국인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명에 따라 onUCI를 맡고 있는 최영진 유엔 사무총장 특별대표를 만났다. 최 대표는 지난 4월 아프리카 현지취재에 나선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단기적인 경제적 이득에 매몰되지 않고 장기적으로,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 글로벌 이슈들을 마주해야 한다”며 “한국에 ‘계몽된 국익(enlightened national interest)’의 관점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최 대표는 “코트디부아르의 분쟁도 글로벌화와 연관돼 있다”는 말로 현지 상황을 소개했다. 이 나라는 1960년 독립 이래로 경제가 괜찮은 편이었다. 사헬(사하라 이남 건조지대)에 위치한 말리나 부르키나파소와 달리 농업 조건이 좋아 언제나 이주민들이 몰려들었다. 1800만 인구 중 600만명이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80년대부터 폭락하기 시작한 세계 농산물 가격이 문제였다. 경제가 좋을 때는 이주민들을 데려다 농사일을 시켰는데 카카오, 커피값이 떨어지니 그들을 몰아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오래도록 뿌리내리고 살아온 이주자들, 그리고 경제위기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북부인들은 정부에 반발하기 시작했다. 장기집권을 했던 초대 대통령이 죽은 뒤 정정불안이 가시화됐다. 2002년 대선에서 로랑 바그보 현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북부 주민들이 정부에 반기를 들고 무장투쟁에 나서 일종의 내전이 일어났다. 국제사회의 중재로 유혈충돌은 끝났지만 아직 정부가 약속한 대선을 치르지 않아 갈등이 남아있다. 최 대표는 “선거가 먼저냐 남북 통합이 먼저냐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한국의 해방정국을 떠올린다”고 말했다.
그는 평화유지와 재건 활동을 하는데 한국의 경험은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분단 요소가 있는 나라에 선거만 도입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잘 알지요. 교육과 문화의 바탕이 없는 ‘선거 민주주의’는 더 큰 위험을 부를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든 인권이든, 제도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중부아프리카의 자원부국인 콩고민주공화국, 서아프리카의 내전지역이었던 라이베리아는 유엔 관리 하에 성공적으로 선거를 치렀지만 좋은 통치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라이베리아는 유엔 지원으로 군인·경찰을 양성했지만 그들에게 월급을 줄 예산이 없다. 콩고민주공화국도 마찬가지였다. 외부 원조금은 가야 할 곳에 잘 전달되지 않았다. 급여를 받지 못한 콩고민주공화국 군인들은 변방에서 반군처럼 변질돼 오히려 주민들을 착취하고 있다.
개발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비롯한 권위주의적 개발과정을 모델로 삼으려 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최 대표의 접근은 조심스러웠다. “개발독재라는 것은 동아시아의 특수한 과정이었습니다. 높은 교육열과 이를 뒷받침하는 교육인프라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또한 권위주의적 개발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과도기적인 과정입니다.” 그는 “한국은 권위주의적 개발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데에 성공했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면서 “이 이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권위주의적 개발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ONUCI는 교육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평화유지군의 주요 활동은 치안 순찰을 하는 것뿐 아니라 교육인프라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는 “지방 교육시설 확충에 유엔군을 보내자 주민들이 호의적으로 변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준비 안된 선거민주주의보다 장기적인 교육·개발을 중시하는 관점 때문에, 서방 원조공여국들로부터 ‘민주주의를 도외시한다’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최 대표는 “이곳 사람들에게 우리의 경험을 말해주면 크게 공감하는데, 돈을 내주는 서방 원조공여국들과는 생각의 격차가 있다”고 말했다. “개발과 원조 사이의 갭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입니다. 안타깝게도 일본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교육과 문화에 투자, 30년 이후를 내다보고 개발을 도와줄 수 있어야 했는데 서양식 모델에 따라 돈만 내고 말았던 거죠.” 최 대표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서방 선진국들의 시각과, 개발이나 경제안정·통합을 우선 필요로 하는 후진국의 시각을 동시에 갖는 것은 힘든 일”이라면서 “한국은 양쪽을 다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한국인들, 특히 젊은이들을 향해 “문화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다르고 역사도 다른 곳에서 자기를 키울 수 있다”면서 “서양만 보지 말고 우리와 다른 세계를 보라”고 주문했다. 1980년대 이전까지는 선진국들을 쳐다보며 배울 수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덜 발전한 쪽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프리카에 대한 한국의 관심은 극히 부족하다. onUCI의 1만명 식구 중 동아시아 출신은 최 대표 외에 일본인 2명과 한국 군인 2명, 중국인 8명이 전부다.
이라크전 파병 과정에서 ‘석유 많은 나라에 군대를 보내 국익을 챙겨야 한다’는 근시안적인 사고가 판친 것이 사실이다. 최 대표는 “우리가 당장 어떤 이익을 얻어내기 위해 파병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리라”고 주문했다. 그는 “이제 우리는 범 세계적인 문제에 국제사회의 일환으로 대처한다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며 “그것이 궁극적인 국익, 미래를 내다보는 계몽된 국익”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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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UCI를 이끄는 최고 책임자는 한국인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명에 따라 onUCI를 맡고 있는 최영진 유엔 사무총장 특별대표를 만났다. 최 대표는 지난 4월 아프리카 현지취재에 나선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단기적인 경제적 이득에 매몰되지 않고 장기적으로,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 글로벌 이슈들을 마주해야 한다”며 “한국에 ‘계몽된 국익(enlightened national interest)’의 관점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최 대표는 “코트디부아르의 분쟁도 글로벌화와 연관돼 있다”는 말로 현지 상황을 소개했다. 이 나라는 1960년 독립 이래로 경제가 괜찮은 편이었다. 사헬(사하라 이남 건조지대)에 위치한 말리나 부르키나파소와 달리 농업 조건이 좋아 언제나 이주민들이 몰려들었다. 1800만 인구 중 600만명이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80년대부터 폭락하기 시작한 세계 농산물 가격이 문제였다. 경제가 좋을 때는 이주민들을 데려다 농사일을 시켰는데 카카오, 커피값이 떨어지니 그들을 몰아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오래도록 뿌리내리고 살아온 이주자들, 그리고 경제위기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북부인들은 정부에 반발하기 시작했다. 장기집권을 했던 초대 대통령이 죽은 뒤 정정불안이 가시화됐다. 2002년 대선에서 로랑 바그보 현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북부 주민들이 정부에 반기를 들고 무장투쟁에 나서 일종의 내전이 일어났다. 국제사회의 중재로 유혈충돌은 끝났지만 아직 정부가 약속한 대선을 치르지 않아 갈등이 남아있다. 최 대표는 “선거가 먼저냐 남북 통합이 먼저냐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한국의 해방정국을 떠올린다”고 말했다.
그는 평화유지와 재건 활동을 하는데 한국의 경험은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분단 요소가 있는 나라에 선거만 도입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잘 알지요. 교육과 문화의 바탕이 없는 ‘선거 민주주의’는 더 큰 위험을 부를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든 인권이든, 제도만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중부아프리카의 자원부국인 콩고민주공화국, 서아프리카의 내전지역이었던 라이베리아는 유엔 관리 하에 성공적으로 선거를 치렀지만 좋은 통치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라이베리아는 유엔 지원으로 군인·경찰을 양성했지만 그들에게 월급을 줄 예산이 없다. 콩고민주공화국도 마찬가지였다. 외부 원조금은 가야 할 곳에 잘 전달되지 않았다. 급여를 받지 못한 콩고민주공화국 군인들은 변방에서 반군처럼 변질돼 오히려 주민들을 착취하고 있다.
개발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비롯한 권위주의적 개발과정을 모델로 삼으려 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최 대표의 접근은 조심스러웠다. “개발독재라는 것은 동아시아의 특수한 과정이었습니다. 높은 교육열과 이를 뒷받침하는 교육인프라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또한 권위주의적 개발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과도기적인 과정입니다.” 그는 “한국은 권위주의적 개발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데에 성공했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면서 “이 이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권위주의적 개발은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ONUCI는 교육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평화유지군의 주요 활동은 치안 순찰을 하는 것뿐 아니라 교육인프라를 확보하는 것이다. 그는 “지방 교육시설 확충에 유엔군을 보내자 주민들이 호의적으로 변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준비 안된 선거민주주의보다 장기적인 교육·개발을 중시하는 관점 때문에, 서방 원조공여국들로부터 ‘민주주의를 도외시한다’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최 대표는 “이곳 사람들에게 우리의 경험을 말해주면 크게 공감하는데, 돈을 내주는 서방 원조공여국들과는 생각의 격차가 있다”고 말했다. “개발과 원조 사이의 갭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입니다. 안타깝게도 일본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교육과 문화에 투자, 30년 이후를 내다보고 개발을 도와줄 수 있어야 했는데 서양식 모델에 따라 돈만 내고 말았던 거죠.” 최 대표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서방 선진국들의 시각과, 개발이나 경제안정·통합을 우선 필요로 하는 후진국의 시각을 동시에 갖는 것은 힘든 일”이라면서 “한국은 양쪽을 다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한국인들, 특히 젊은이들을 향해 “문화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다르고 역사도 다른 곳에서 자기를 키울 수 있다”면서 “서양만 보지 말고 우리와 다른 세계를 보라”고 주문했다. 1980년대 이전까지는 선진국들을 쳐다보며 배울 수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덜 발전한 쪽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프리카에 대한 한국의 관심은 극히 부족하다. onUCI의 1만명 식구 중 동아시아 출신은 최 대표 외에 일본인 2명과 한국 군인 2명, 중국인 8명이 전부다.
이라크전 파병 과정에서 ‘석유 많은 나라에 군대를 보내 국익을 챙겨야 한다’는 근시안적인 사고가 판친 것이 사실이다. 최 대표는 “우리가 당장 어떤 이익을 얻어내기 위해 파병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리라”고 주문했다. 그는 “이제 우리는 범 세계적인 문제에 국제사회의 일환으로 대처한다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며 “그것이 궁극적인 국익, 미래를 내다보는 계몽된 국익”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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