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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방/관심

'전설의 주먹' 안토니파 보스 안상민

by 文喆洙 2011. 5. 28.

'전설의 주먹' 안토니파 보스 안상민

 

80∼90년대 맨주먹 하나로 서울의 조폭세계를 평정했던
안토니파 보스 안상민씨.



충남 서산시내에 있는 동부시장에 들어서면 옹기종기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 있는 가게들 사이로 ‘행운이불’이라는 이불가게가 있다.

‘드르륵’ 이곳의 가게문이 열리고 중년의 사내가 이불을 한짐
어깨에 이고 나와 승용차에 싣는다. 배달준비를 하는 품이 왠지 어설퍼
보이는데, 뒤따라 나와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낙의 얼굴엔 행복한
미소가 가득하다.

“다녀올게”하며 사내가 차에 이불을 싣고 떠날 때까지 아낙의 얼굴엔
미소가 멈추지 않는다.
서로 옆에 있기만 해도 행복한 금슬 좋은 부부의 모습이다.
이내 가게로 들어가려던 아낙이 기자에게 한마디한다.

“천하의 깡패 두목 안상민도 제 말 한마디면 꼼짝 못하니
제가 진짜 왕이지요.”


안상민씨(44)는 80∼90년대 서울의 중심가인 종로와 명동 및 강남
일대를 주름잡던 폭력조직 안토니파의 보스.
87년 살인교사 혐의로 조사받던 중 구치소를 탈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는 당시 언론에 ‘경호원을 거느리고 외제 방탄차를 타고
다니는 폭력계의 대부’로 소개될 정도로 거물이었다.
92년 10월 청송교도소에서 출소했을 때 교도소 정문 앞에 관광버스
3대와 승용차 30대가 늘어섰을 정도.
그의 파란만장한 주먹인생을 담은 실화소설 <거물>은 99년 베스트셀러가
되어 다시 한번 세상에 그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그런 그가 지금은 아내의 이불가게에서 이불배달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하루 종일 이불가게에 앉아 있는 것은 아니다.
그가 운영하는 청소년범죄예방상담소에서 활동을 하다 아내가 전화만
하면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간다.

“하루에도 몇번씩 전화가 옵니다. 그럼 즉각 달려가요.
아내가 그걸 원하니까.”

그뿐만이 아니다. 아내가 배달 일로 부르지 않는 날에도 가게에 나가
함께 커피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
또한 새벽 6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아내 배정화씨(44)를 태우고 가게로
출근해 가게문을 열어주고, 밤 8시30분이면 다시 가게로 나가 가게문을
닫고 아내와 함께 집으로 온다. 그리고 잘 때면 아침에 일어날 때까지
아내에게 팔베개를 해준다.
아무리 팔이 저리고 아파도 팔을 빼지 않는다고.


<첫눈에 반해 10년간 쫓아다녀 결혼한 ‘소꿉친구’ 아내>

한때 수백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조폭의 보스였던 그가 이렇게 자상한
남편으로 변신한 이유가 뭘까?
안상민·배정화 부부로부터 그 사연을 들어보았다.
안씨는 자신이 주먹세계에 발을 디디게 된 계기부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어릴 때 언어장애가 있었어요. 말을 더듬으니까 친구들하고
의사소통이 잘 안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보다는 주먹이 앞서게
되었죠. 초등학교 때부터 싸움꾼으로 유명했어요.”

매일 싸움만 하는 아들을 보다못한 부모가 그를 서울로 유학을 보냈다.
하지만 싸움꾼인 그에게 서울은 더 ‘큰 물’이었을 뿐이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아예 학교를
때려치우고 본격적으로 주먹세계에 발을 내디뎠다.

“저는 남의 밑에 있는 체질이 못돼요. 처음부터 제가 동생들을
거느렸죠. 그리고 시시하게 변두리에서 놀지 않았어요. 곧장 종로2가를
접수하기 시작했죠. 종로 전체를 장악한 다음엔 무교동으로,
명동으로, 나중엔 강남과 영등포 등 서울 전역을 평정했어요.”

그는 ‘전설의 주먹’으로 통한다. 칼이나 야구방망이 등 연장을
사용하지 않고 맨주먹만으로 조폭세계를 평정한 마지막 건달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키도 크지 않고 주먹도 작은 편이지만 그의 주먹을
당해낼 사람은 없었다. 당시 프로복싱 세계챔피언을 기절시키고,
2m가 넘는 헤비급 권투선수를 단 한방에 무너뜨릴 정도였으니 웬만한
주먹들은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80년대 중반 서울 전역을 장악했을 때에는 그야말로 천하가 다
내 것이었어요. 거느린 조직원만 4백명이 넘었고, 한 건에 30억원,
요즘으로 치면 1백억원의 돈을 주무르기도 했어요.
하루에 3천만원 정도는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들어오는 돈이었습니다.
그때 제 품위유지비가 한달에 3천만원이었어요.”

당시 그가 어느 정도 지위와 돈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그의 차였다. 다른 조폭 두목들이 국내 중형승용차나
그만그만한 외제차를 몰고다닐 때 그는 3억5천만원에 구입한 벤츠500
리무진을 타고 다녔다. 뿐만 아니라 그가 움직이면 경호차가 앞뒤에서
호위했고, 고향 서산에 내려오면 지역 유지들이 마중을 나올 정도였
다고 한다.

이처럼 천하가 다 그의 것이었고, 모든 사람이 그 앞에서 고개를
숙였지만 단 한사람 아내 배정화씨만은 예외였다.
오히려 벤츠를 끌고 동생들을 거느리고 집에 들어서면
“이 아파트엔 당신 같은 깡패는 없고 점잖은 사람들만 사는 곳이니까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 세워놓고 걸어서 들어오라”고 큰소리를
칠 정도였다.

“남편이 오면 동네에 구경이 나죠. 다들 모여들고, 창피하잖아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창피해서 얼굴이 화끈거려요.”

결혼하기 전부터 안씨가 조폭의 보스였다는 것쯤은 그녀도 알고 있었을
텐데 “깡패 남편이 부끄러웠다”면서도 그와 결혼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이 안씨는 “제가 납치했어요”하며 웃는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이미 배씨를 색시로 점찍었다는 것.
말하자면 첫사랑과 결혼을 한 셈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아래윗집에 사는 동네 소꿉친구였어요.
제가 의사를 하면 이분(안씨는 아내를 꼭 이렇게 불렀다)은
간호사를 하곤 했죠. 초등학교도 같이 다녔어요. 결혼해서 지금까지
같이 사니까 벌써 4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온 셈이죠.”

동네 소꿉친구였지만 같은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계속 친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하긴 배씨의 눈에 매일 싸움질만 하는 안씨가 좋게 보일 리
없었다. 그래서 제일 싫어하는 아이가 바로 안씨였다고.
두 사람의 인연이 다시 이어진 건 중학교 1학년 겨울이었다.
서울로 간 안씨가 방학을 맞아 고향에 내려왔다가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배씨를 본 것이다.

“그때 딱 찍었죠. 그래서 똘마니들 시켜서 불러냈어요. 고등학교
때는 이분도 서울에서 학교를 다녀서 더 자주 만날 수 있었죠.
공부를 잘해서 서울여상을 나왔거든요. 지금은 제가 하도 고생을
시켜서 쭈그렁 할망구가 되었지만 그때는 서산에서 제일 예뻤어요.
그러니까 천하의 안상민이 아내로 삼으려고 한 거죠.”

배씨에게 안씨의 어디가 좋아서 만났냐고 묻자 “좋아서 만났나요.
무서워서 만났지”라고 한다. 처음엔 만나는 게 죽기보다 싫어
피하기도 했는데 만나면 아이스크림 등 맛있는 것을 사주면서 환심을
사려고 노력을 하는 게 재미있어 무서우면서도 만났다며 웃었다.

“제게 관심을 계속 보이니까 기분은 좋았죠.”

조곤조곤 수줍게 말하는 모습이 꽤 마음이 여린 성격이었을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천하의 싸움꾼 앞에서 한번도 주눅 든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는 게 안씨의 이야기다.

“무서워서 만나기는커녕 저한테 막 화도 내요. 제가 다른 사람과
시비가 붙어 싸움을 하다보면 없어져요. 그냥 집에 가버리는 거죠.
그렇게 대범하니까 지금까지 나랑 살았죠. 어렸을 때는 여자인데도
따발총 가지고 놀았다니까요.”

배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산으로 돌아와 이불가게를 차렸다.
안씨는 본격적으로 주먹인생의 길을 걸으면서 틈틈이 배씨를 찾았다.
물론 그녀의 집에서 그를 탐탁하게 여길 리 없었다. 집안의 반대가
심하자 안씨는 80년 배씨를 납치하다시피 하면서 억지로 결혼승낙을
받아내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장에는 전국에서 조폭들이 몰려왔는데,
두 사람이 신혼여행을 떠난 뒤 조폭들끼리 피로연장에서 싸움이 붙어
칼부림이 일어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자식은 올바르게 키우겠다며 깡패 남편 돈 한푼도 안 받은 아내>

서울 최고 조직 보스의 아내가 된 배씨였지만 그녀는 서산을 떠나지
않았고, 이불장사도 계속했다. 그리고 안씨가 가져다 주는 돈을
한푼도 받지 않았다.

“제가 한 열흘에 한번씩 서산에 내려와요. 그때마다 생활비를 내놓죠.
그땐 정말 아무 일을 안 해도 저절로 돈이 들어올 때였어요. 그런데
제가 돈을 주면 이분은 ‘도로 가져가라’며 집어던져요. 부정한 일을
해서 번 돈인 줄 알고 더러운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그 정도로
고지식했어요. 그것 때문에 제가 많이 속상했죠. 만약 그때 제가 준
돈을 다 받았으면 서산 제일의 갑부가 되었을 거예요.”

화가 나서 몇달씩 안 내려가기도 하고, 동생들이 주면 받을까 싶어
동생들에게 대신 전해주게 해보기도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배씨는 안씨의 돈을 한푼도 안 받고 혼자 이불가게를 운영하면서
번 돈으로 친정부모와 시부모를 보살폈고, 자식들 교육을 시켰다.

“떳떳하지 않게 번 돈으로 자식을 키우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번
돈으로도 굶지 않고 살 수 있었으니까요. 남편이 그러고 사니까
저라도 제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밤에는 아르바이트로
식당 젓가락에 종이 씌우는 일을 하면서 살았어요. 이불도 꿰매고….”

그는 남편이 깡패라고 사람들로부터 자신까지 그런 취급을 받는 게
죽기보다 싫었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남편의 돈을 거부했는지도
모른다고. 사실 안씨 입장에서는 남편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게 미안해
돈으로라도 보상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게 안상민식 사랑의 표현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배씨가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
그녀가 남편에게 원한 것은 돈이 아니라 사랑이었다.

“제가 그 생활을 하는 동안 이분이 아이들을 정말 잘 키웠어요.
87년에 교도소에 들어가 92년에 출소했는데 집에 와서 보니까 온통
아이들이 학교에서 받아온 상장투성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당신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어머니라고.”

결혼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3년 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이 함께 산 날은
손으로 꼽을 정도다. 안씨가 조폭생활 20년 동안 10년이란 시간을
감옥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87년에는 살인교사 혐의로 사형을
구형받기도 했다. 1심에서 무기징역을, 항소심에서 10년을 선고받은
후 5년을 살았다. 10년 동안 11번이나 감옥을 옮겨다녔는데 배씨는
꼬박꼬박 면회를 갔다.

“항상 그래요. 남편 잘 만나서 전국 유람 한번 잘했다고.
전국 곳곳의 교도소란 교도소는 다 다녀보았으니까 그런 말이 나올
법도 하죠.”

조폭 인생을 살던 안씨가 손을 씻은 계기는 94년 배씨가 말기암 판정을
받으면서다. 우연히 ‘동생’들의 권유로 부부가 함께 종합검진을
받았다가 자궁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릴 들었다.

“여지껏 고생만 시켰는데 이게 뭐냐 싶더군요. 삶이란 게 참 허망
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때 이분이 ‘이제 자기가 죽으면 애들
누가 키우냐’며 우는데 그때 천하의 안상민이도 처음으로 눈물이란
걸 흘려보았어요.”


<제2의 신혼을 즐기는 부부>

아내를 살리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아내만 살릴 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다 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점쟁이가 검은 물건이 안 좋다고 하자 그 즉시 집안에 있던 값비싼

수석들을 다 치워버릴 정도였다.
그런 정성 때문인지 배씨는 12시간에 걸쳐 암 덩어리를 78개나 떼어
내는 대수술을 한 끝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하지만 언제 다시 발병을
할지 몰라 3개월에 한번씩 병원에 다니며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아내가 저에게 병주고 약주었다고 해요. 마음고생 시켜서 병에
걸리게 해놓았는데, 이제는 제가 가장 효과 좋은 치료약이라고
하더군요. 제가 곁에 있는 것 이상 좋은 치료약은 없다고요.”

물론 조직생활을 일시에 청산할 순 없었다. 아니 주위에서 그를
가만 내버려두질 않았다. 결국 97년 다시 감옥에 들어갔고, 99년
출소하면서 완전히 조직을 떠나 서산의 아내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출소 후 청소년들을 범죄의 유혹에서 구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요즘도 일주일에 3∼4일은 밤 10시면 집을 나서 새벽 4시까지 순찰
활동을 하면서 방황하는 아이들이 있으면 붙잡아 나쁜 길로 빠지지
않도록 설득하고 있다. “처음엔 멋있어 보이지만 결국엔 범죄자의
길을 걷게 되고 결과가 비참하더라”는 그의 말에 불량 청소년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을 못 차리는 아이들은 부모를 설득해 군대에
자원입대시켰다. 돌아와 새사람이 되라는 것. 그러길 3년여.
안씨는 이제 서산에 건달이나 조폭은 없다고 단언한다.

“한번은 폭주족 애들이 절도를 한 것 같아 붙잡으러 가다가 교통
사고를 당했어요. 폐차시킬 정도로 큰 사고였죠. 전신타박상을
입었는데, 그때 이분에게 엄청 혼났죠. 왜 고생을 사서 하냐고.
그래도 제가 이 일을 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안씨는 지금 제2의 신혼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같이 산에도 가고
대화도 하면서 부부의 정인 무엇인지 흠뻑 느끼고 있다. 전에는
아무리 비싼 옷을 사줘도 안 입고 버리던 아내가 이제는 싸구려 옷을
사줘도 입이 함박만해진다고 한다. 서산에 정착하겠다고 했을 때
처음엔 믿지 않던 아내도 건실하게 생활하는 그를 보며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안씨가 시장에 나와 이불을 배달한다는 건 꿈에도 상상
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었다.

“전에는 동생들에게 위엄을 갖추기 위해 웃질 않았어요. 자연 아내
앞에서도 웃는 법이 없었죠. 그런데 이젠 웃어요. 사람 사는 맛을
느끼게 된 거죠. 물론 지금도 화려한 시절에 대한 유혹이 끊이질 않죠.
처음엔 흔들리기도 했지만 이젠 흔들리지 않아요. 아내를 위해 아내가
하자는 대로 살 겁니다. 비록 천하를 잃었지만 대신 아내와 가족의
사랑을 얻었으니 세상 부러울 게 없어요.”

그의 말에 힘이 넘쳐흘렀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배씨의 얼굴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말을 할 때 늘 서로 높임말을 하는 이 부부를
보며 새삼 부부의 사랑이란 게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