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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아침일기

그해 겨울

by 文喆洙 2015. 11. 25.

 그해 겨울

 

 

 

 

기울어진 가세를 일으키는 건

죽은 나무를 살리는 것과 다름없다

 

겨우 세 식구 바람이라도 피하려 좁은

마루 한켠을 빌린 육개월, 새벽이면

울타리 밖 공동 우물에 나갔었다

나이 많은 소나무 허리 새끼줄 감고

정권에 멍이 들도록 두들기고 나면

머리에선 김이 희망처럼 피어올랐다

영하 십오도 이십도 곤두박질치는

겨울은 혹독했지만 사람은 더 지독했다

곱은 두레박 줄을 펴가며 끌어 올린 물을

낡은 팬티 바람에 머리부터 뒤집어쓰면

상고머리 머리칼에 길게 고드름이 달렸다

국수산 등산로 운동 오는 어르신들

눈동자마저 떨리는지 혀를 찬다

"저 자식은 아무리 추워도 할 건 다 해"

 

열일곱 살, 그 해 겨울은 없었다

잃어버린 겨울은 주먹에 검게 자리 잡더니

사십이 되어서야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2015. 11. 16. 08:12

아직도 찬물로 샤워를 한다

 

 

감나무 잎도 회화나무 잎도 대부분 떨어져 바람이 거세도 마당은 쓸쓸하다

몸보시를 해가며 가을 내내 마당을 쓸던 빗자루도 쉴 때가 다가오는 거다

모든 건 때가 있겠지

어떻게 살았나 싶었던 시간들도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된다

 

고통은 더 큰 고통으로

시련은 더 큰 시련으로

사랑은 더 큰 사랑으로 지울 수 있지만 편안히 받아들이는 것 만큼 좋은 방법을 아직 모르겠다

부드러운 과녁이 된다면 화살 쯤이야 거뜬히 받아 낼 수 있겠다

 

하늘이 아주 검다

무엇을 저리도 많이 채우고 있을까

시원하게 쏟아붇고 싶을 터인데 아직 꾹꾹 참고 있는 걸 보니 그래도 견딜만 한가 보다

 

한때 유행하던 문구가 생각난다

아프냐 ?

나도 아프다 !

 

사람이 풍경이 되는 마리안느, 그 옆

구멍난 낡은 스레트 벽도 그림처럼 아름답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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