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문학/시론, 기타

안사라 시인의 ‘수국’을 읽으며 / 문철수

by 文喆洙 2010. 7. 15.

안사라 시인의 ‘수국’을 읽으며 / 문철수

 

  사람들은 누군가를 대하거나 음식을 마주하거나, 전혀 낯설거나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면 아니 기억 한 켠 모든 사물이나 현상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지 않는 한 적당한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게 되는 것이 일상적인 삶의 모습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때로, 아주 편협한 나는 시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 과연 이 시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하는 의도에 초점을 맞추고 읽는 경우가 많다. 특정한 시인의 시나 또는 나름 시적 성향을 안다고 할 수 있는 시인들의 시에 있어 자연예찬이나 아름다움을 단순하게 노래한 것들이 아닌 경우엔 특히 더 그러하다.

 

  나에게 있어 누이의 시는 소박한 것 같으면서도 강한 자기주장을 담고, 온순한 것 같으면서도 거친 자기 소리를 가지고 있으며, 조용하지만 결코 정지해 있지 않다 는 것을 느껴왔기 때문에 최근 시 ‘수국’은 몇 번을 반복하여 읽는 동안 나를 더욱 편협하게 몰아갔다. 왠지 모르지만 나를 자꾸 움직이는 그 사소한 것에 대한 마음의 광풍은 잠재우려 해도 원하는 대로 잘 되지가 않는다. 그저 단순히 눈동자를 통하여 내안에 들어오는 아름다움을 즐기려 했을 뿐인데 단순히 즐겨지지 않고 손이 가고 근심을 자라게 하는 마음의 철심으로 자릴 잡았는지......

수국을 샀다

베란다 한켠에 자리 잡아주고

분갈이도 해주고

버거워 보이는 꽃송이 몇은 잘라줬다.

잎 흔들어 그 앞에 자주 나를 세우더니

지금은 잎마다 늘어뜨리고 미동도 하지 않아

수국에게서 기쁨을 느끼기보다 도리어 수국에게서 근심을 얻는다.

 

  자리도 잡아주고, 분갈이도 해주고, 꽃송이도 잘라 주었건만

철따라 꽃피우지 않아도 되고

그저 살아 있어 주기만을 바라는

무엇에 목을 매는 일이

생소하더니

무엇이라도 붙잡고

잡고 있는 그것이 단단히 묶어주기를 바라는

작금의 상황이 침묵의 소망으로 자리 잡기까지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하여는 명확한 마침표를 찍어내어 구분을 하는 반면 상대방에 대한 기대나 희망에 대하여는 마침표를 찍지 못하는 시인의 기다림의 진실은 무엇에 대한, 누구를 향한 희망적 절망인가. “안다는 것은 기다리는 것”이라는 궤변적 도에 다다랐다는 듯 말의 필요가 아니라 따뜻한 손끝의 체온을 절실해 하는 상처를 대하는 법을 알고 있다.

 

  수국이 진딧물과 싸우고 있는 것을 뒤늦게 알고는

약을 물에 섞어 뿌려주었더니

지금은 한낮의 뜨거운 햇볕 속에서도 싱싱,

생명의 나래 활짝 펴는 수국의 날개짓을 본다.

현재진행형이어도 좋고, 미래에 대한 기대치라도 좋다. 다만 있었던 과거형만 아니라면........

 

  그러나 여기서 간과한 부분이 있다. 바로 진딧물이라는 생명체의 희생이다. 수국의 아름다움과 생명은 수없이 많은 진딧물의 생명을 독극물(진딧물의 입장에서 보면)로 희생을 시키고 얻어낸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시인의 시선이 수국에 머물러 있지 않고 진딧물에 머물러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니 그 양쪽에 함께 같은 무게의 시선을 두었으면 어땠을까. 물론 이런 질문 자체가 우문이라는 것을 안다. 이런 가정을 가지고 시를 지었다면 그것은 이미 시가 아닐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이런 가정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것도 생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론 생명 앞에서도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당연한 것이 꼭 올바른 것도 아니며 정의로운 것도 아니다. 다만 날개 짓을 보고 싶은 나의 욕망일 뿐이다.

 

  바람에 흔들리고 말에 흔들리고 눈빛에 흔들리는 수국은 꽃대 하나에 수십 또는 수백의 작은 꽃들이 모여 한 송이를 이루다 보니 개화시기가 되면 많은 양의 물을 필요로 한다. 모두가 드러날 수 없고 모두가 똑같이 물을 나눌 수 없다. 어떤 것들은 먼저 시들기도 하고 또 어떤 것들은 속으로 가려지기도 한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고 모든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과정이다.

 

  진딧물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진딧물을 수국에게 옮겨놓은 개미 또한 그 달콤한 분비물을 먹지 못하게 되었다.

 

 

수국을 샀다

베란다 한켠에 자리 잡아주고

분갈이도 해주고

버거워 보이는 꽃송이 몇은 잘라줬다.

 

잎 흔들어 그 앞에 자주 나를 세우더니

지금은 잎마다 늘어뜨리고 미동도 하지 않아

철따라 꽃피우지 않아도 되고

그저 살아 있어 주기만을 바라는

 

무엇에 목을 매는 일이

생소하더니

무엇이라도 붙잡고

잡고 있는 그것이 단단히 묶어주기를 바라는

 

수국이 진딧물과 싸우고 있는 것을 뒤늦게 알고는

약을 물에 섞어 뿌려주었더니

지금은 한낮의 뜨거운 햇볕 속에서도 싱싱,

생명의 나래 활짝 펴는 수국의 날개짓을 본다.

 

 

  굵은 사포로 초벌한 쇳조각처럼 거칠게 느껴진다. 詩空이 투영된다. [2010. 7. 15. 사무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