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가지를 얻어 쓰려거든 |이정록
먼저 미안하단 말 건네고
햇살 좋은 남쪽 가지를 얻어오너라
원추리꽃이 피기 전에 몸 추스를 수 있도록
마침 이별주를 마친 밑가지라면 좋으련만
진물 위에 흙 한 줌 문지르고 이끼옷도 입혀주고
도려낸 나무그늘, 네 그림자로 둥글게 기워보아라
남은 나무 밑동이 몽둥이가 되지 않도록
끌고 온 나뭇가지가 채찍이 되지 않도록
- 시집,『 정말』《창비》에서
<시읽기>
우리의 서정시가 이 정도로 정밀하게 진화했다니 놀랍기만 하다. 말의 군더
더기가 눈 씻고 봐도 없다. 시어의 선택이 하나 더 남지도 않고 하나 더 모자라
지도 않다. 그 쓰임새가 긴요하다. 한 치도 어긋남 없이 유기적으로 짜여있다.
나뭇가지 하나 베어 오는데, ‘벤다’고 표현하지 않았다. 탁발이거나 동냥의
뜻으로 “얻어 쓴다”고 했다. 나무가 나와 같이 생명을 가진 것이라는 점에 유념
한 것이다. 좀 엉뚱한 얘기를 하자면 흔히 하는 말로 ‘자연보호’라는 말에는 인
간을 우위에 두는 오만한 표현이다. 잘 생각해보면 자연에게 우리가 보호받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나무에게 나뭇가지를 얻어 쓰는 것이다. 그 덕에 인간인 내
가 편리를 제공받는 것이라면 “얻어 쓴다”는 표현은 결코 겸손의 표현이 아니
다.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표현이다.
내가 나뭇가지를 얻어오는데 나무가 몸을 추스르지 못할 정도여서는 아니
된다. 원추리꽃은 꽃 한 송이가 피었다가 지는 데 딱 하루 걸린다. 그 사이에 나
무가 몸을 추스를 정도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마음이 그 표현이 아름답다. 예
전에 우리는 그랬다. 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황토를 발라주었다. 그리고 이끼로
덮어 붕대처럼 감싸주었다. 그게 나무에게 얼마나 치유의 효과가 있을지는 모
르되 그렇게 했다. 그러니 살아 꿈틀거리는 생명에게는 오죽했겠는가?
“도려낸 나무 그늘, 네 그림자로 둥글게 기워”보라니 ! 나무와 사람이 한 몸
이라는 표현을 그렇게 한 것이렸다. 나뭇가지 하나 얻어오는데 남은 나무기둥
이 몽둥이가 되도록 모지락스럽게 나무를 대하지 말기를 당부한다. 더구나 얻
어온 나뭇가지의 쓰임새가 남을 아프게 하거나 해치는 데 있어서는 아니 된다
고 말한다. 연민을 넘어서 동체대비의 크나큰 자비의식을 그렇게 그려내고 있다.
어렵지 않은 몇 개의 단어와 몇 줄 안 되는 행간에 이렇게 찰람대는 사유의
깊이를 감추어 놓다니, 요설이 넘치는 우리 시단을 차분히 돌아보게 한다.
[월간 우리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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