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유령들
정한용
엄마, 여긴 지옥 같아요
짧은 생에도 지은 업이 많아
이렇게 찬 흙에 누워 검은 하늘을 보고 있어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꿈처럼
늘 내 뒤를 쫒던 이역만리 고향 사내가 생각나기도 했고
황옥 빛으로 빛나던 동구 밖 들판이 선연하기도 했지만
그래, 참자, 말없는 등에 심지를 돋우면서
한 가정을 일구고 아이를 낳고
남편이 잘 번다니 친정 살림살이 좀 펴드리자
물 선 땅이지만 새 삶을 튼실하게 쌓아보리라, 꿈에서
아, 그런데, 남편은 아귀였어요, 엄마
매일 병원 약을 먹는데 그 때마다
미친개처럼 밤새 나를 못살게 굴었어요
한밤중에 깨워 붉으락푸르락 못 알아들을 말로 악다구니를 하더니
그 더러운 손가락으로 내 샅을 마구 쑤셔대고
조금 싫은 내색이라도 하면 망치와 과도를 휘둘렀어요
베트남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게 죄라면
나이 열일곱 연상의 정신병자를 남편으로 맞은 게 운명이라면
옛 마당가의 연꽃을 그리워한 것이 어리석은 집착이라면
한국에 온지 꼭 일주일 만에
이렇게 죽어 지옥에 든 것을 어쩌겠어요
엄마, 슬퍼하지 말아요
남은 말이 있어요, 우리나라 내 또래 여자애들에게
전하세요, 브로커를 통해 결혼하지 말라고
나처럼 싸구려 여자가 되지 말라고
꽃 진 뒤, 그 눈물을 밟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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