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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함께읽는 시

다시, 유령들 - 정한용

by 文喆洙 2011. 2. 16.

 다시, 유령들

 

 

                         정한용

 

 

 

 

  엄마, 여긴 지옥 같아요

  짧은 생에도 지은 업이 많아

  이렇게 찬 흙에 누워 검은 하늘을 보고 있어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꿈처럼

  늘 내 뒤를 쫒던 이역만리 고향 사내가 생각나기도 했고

  황옥 빛으로 빛나던 동구 밖 들판이 선연하기도 했지만

  그래, 참자, 말없는 등에 심지를 돋우면서

  한 가정을 일구고 아이를 낳고

  남편이 잘 번다니 친정 살림살이 좀 펴드리자

  물 선 땅이지만 새 삶을 튼실하게 쌓아보리라, 꿈에서

  아, 그런데, 남편은 아귀였어요, 엄마

  매일 병원 약을 먹는데 그 때마다

  미친개처럼 밤새 나를 못살게 굴었어요

  한밤중에 깨워 붉으락푸르락 못 알아들을 말로 악다구니를 하더니

  그 더러운 손가락으로 내 샅을 마구 쑤셔대고

  조금 싫은 내색이라도 하면 망치와 과도를 휘둘렀어요

  베트남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게 죄라면

  나이 열일곱 연상의 정신병자를 남편으로 맞은 게 운명이라면

  옛 마당가의 연꽃을 그리워한 것이 어리석은 집착이라면

  한국에 온지 꼭 일주일 만에

  이렇게 죽어 지옥에 든 것을 어쩌겠어요

  엄마, 슬퍼하지 말아요

  남은 말이 있어요, 우리나라 내 또래 여자애들에게

  전하세요, 브로커를 통해 결혼하지 말라고

  나처럼 싸구려 여자가 되지 말라고

  꽃 진 뒤, 그 눈물을 밟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