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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함께읽는 시

벌레, 시를 읽다 그리고 시대 가뭄

by 文喆洙 2015. 1. 9.

 

벌레, 시를 읽다

 

이인수

 

 

고요한 새벽

펼친 시집 위로

날벌레 한 마리 기어왔다

 

비척비척 온몸으로

어느 구절 성큼 지나치고

어느 구절 곰곰 머물더니,

 

마침내

절명구를 골랐는지

꼼짝 않고 멈췄다.

 

시를 읽다가 죽을 수 있다니!

오, 하느님

 

[시창 동인시집 '벌새'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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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가뭄

 

김태원

 

 

뱀이다

뱀의 움직임 소리를 들었다

소스라치게 놀라 달아나는 개구리들

몇몇은 먹이가 될 것이다 깊이

더 깊이 잠수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잠수는 초년병처럼 어줍다

숨이 가쁘다 오늘 다시

못 속에 잠겼던 바위 하나가 뾰족이 고개를 내민다

오, 저 세상은 저 등을 보이며 돌아누운 하늘이다

불러도 대답 없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철옹산성이다

그 하늘 밑 거죽뿐인 연못

낙엽처럼 몸을 구부린 개구리들이

겨울 빨래처럼 굳어 죽어가도

가뭄의 끝은 보이지 않고

저 독한 것은 그들의

오래 종족의 습성마저 빼앗고 있었다

 

[무시천 동인시집 '얼음새꽃' 중]

 

 

근 한 달 쯤 되었을까요

무시천동인시집 '얼음새꽃'을 받은 것이.

시골살이가 몸이 우선 움직여야 하는 것이라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다 들춰보고

압제와 자유 사이에서 끝없는 사유를 이어가고 있는 김태원 시인의 가물지 않는 시 한편과

 

지난 주말 이곳 누옥까지 찾아 1박2일을 보내시고 시창동인시집 '벌새'를 선물해 주신 이인수 시인의 편운재 산물 한 편을 소개 합니다

 

자극이 되고 격려가 되는 두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