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행숙의 삶과 사랑 / 문철수
사람들은 때로 누군가의 이면의 삶에 대하여는 상상도 하지 못할 때가 있다.
물론 그 누군가가 보여주는 삶의 모습이 그 이면의 삶을 상상할 수도 없도록 보여지는 삶을 완벽하게 살아가기 때문이기도 하겠거니와 그러나 그보다 우리의 눈이 그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지지 못했거나, 그럴 필요를 굳이 느끼지 못했거나, 아니면 그저 형식적인 관계에 머물며 자기만의 아집스런 눈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리라. 그런 면에서 던 어쨌던 고행숙의 시는 그를 잘 모르는 자들에게는 충격적인 부분이 상당히 많다.
고행숙 시의 기조는 삶과 사랑이다. 두 딸을 가진 그가 결혼 생활 내내 유배지 같던 거제를 빠져나와 홀로 대전에 어설프지만 새로운 둥지를 틀게 된 것은 그의 육체적 독립만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자로부터 의심받던 자신의 삶의 의지를 독립시킨, 그에게 있어서 결혼이라는 사건보다 더 큰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의 삶은 의지의 독립, 속박으로 부터의 자유는 찾았을지언정 그의 시 곳곳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박제된 날개’ ‘부서진 기억’ ‘눈물의 샛강’ 등으로 표현 될 만큼 행복하지 못했고, 이 땅에서 혼자 사는 여자의 처절한 삶의 모습을 연속해서 보여주게 된다. 그의 작품 ‘여윈 달빛을 건너간 새’에서 말하듯 ‘결코 드러눕지 못’ 하고, 쌓여진 앙금들을 씻어내지도 못하며 다만 책상머리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쓰는 것으로 삶을 뜨개질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마치 그것만이 삶의 전부 인 듯.
‘꼼짝없이 저당 잡힌 내가
무거운 깃털 하나 꽂은 채
닳고 닳은 세상에 이끼로 피면
수취인 불명으로 날아든 너는
세월의 끝에 섞여갈 수 있겠지만
그럴 수 없다 나 또한
살아있음의 확인이 절실하기에 ‘ [’확인되지 않는 하루‘ 중]
어쩌면 시인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저당 잡힌’ 일 외에는 없다는 것을 체험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깃털마저도 무겁게 느껴야 하는 삶, 사랑처럼 다가왔던 그 누군가도 ‘수취인 불명’의 우편물 같이 내 것이 아닌 사랑, 아무것도 확인 할 수 없는 불투명한 세상에서 ‘살아있음의 확인이 절실’하였기에 골방에 처박힌 채 자신의 삶을 시로써 발효시켰는지도 모를 일이다
‘몇번의 휘어짐을 거쳐야
슬픔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나
굳은 깃털의 자리에 촘촘히 박힌
상심과 절망의 상엿소리처럼
어둠의 허공을 가르며 울어도
금싸라기로 모인 별들의 늪에
빈혈같이 창백한 상처 헹구며
박제된 날개 위
희망하나 덤으로 올려두고
여윈 달빛을 건너간 새‘ [여윈 달빛을 건너간 새’ 중]
아픔과 공허함이 촘촘히 박힌 상심과 절망의 상엿소리만이 들리는 삶속에서도 이미 박제처럼 굳어버린 꿈을 끝내 버리지 못한 것은 어쩌면 자신의 삶이 아니라 눈 속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딸과 그리고 노트북 하드디스크 저장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의 눈물 냄새 밴 작품들 때문은 아니었을까. 누군가에 의해 끝내 달빛을 건너갈 수밖에 없었지만.
시인 고행숙의 삶은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것처럼 기쁨과 즐거움, 환희와 낭만의 삶이 아니라 그 이면에 저당 잡힌 절망과 아픔, 우울함과 상처들로 버무려진 날들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그가 그 삶의 모습을 아름답게 포장했으며 시로써 그 모습들을 절망에서 희망으로, 고통에서 환희로 치환하였기에 우리는 그의 삶과 그의 작품 모두를 높게 평가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도 밤하늘엔 ‘달빛틈새로 그의 시들이 떨어진다’
[유고시집을 만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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