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권 시집 "저 홀로 뜨거워지는 것들에게"를 읽고 - 2015년 밥북 간-
꽃의 순결을 묻지 마라
김남권
이름 모를 들꽃이 되기 위하여
모진 눈보라 속에서 신음 소리 한 번 뱉어낸 적 없다.
햇살이 하늘의 언어를 빌려와 부르튼 나뭇가지마다
시를 적어도 기침 소리 한 번 토해낸 적 없다.
그저 바닥에 기대어 물 한 모금 찾으려고
어두운 시간 속으로 별이 지나갈
신작로를 만져 보았을 뿐이다.
혼자 일어서지도 못하는 땅위에서
소리죽여 울어 보았을 뿐이다
벌이 눈 흘긴 자리면 어떻고
나비가 날개를 접은 자리면 어떠랴
상처로 얼룩진 자리마다
흰 피 솟구치면 강물도 붉게 물들어
물 속 가득히 숨은 꽃을 피우리니
바람이 뜨겁다고 공연히 의심하지 마라
저 홀로 뜨거워지는 모든 것들은
꽃보다 먼저 제 몸에 불을 붙이고
저승길을 가는 것이다.
순결한 피 한 바가지 무덤을 적시고
훠이 훠이 들풀의 이름이 되는 것이다.
소개팅이 끝난 당일 헤어지고 나서 언제 다시 연락을 주느냐 하는 시간의 문제는 그 인연을 이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한창 삭풍이 기승을 부리던 1월의 끝자락에 김남귄 시인의 시집을 안고는 나는 아직도 에프터를 신청하지 못했던 것인데..... 각설하고 "저 홀로 뜨거워지는 것들에게"라는 제목이 가져다 주는 그때 그 순간의 느낌은 저도 혼자 뜨거워 봤을까?" 라는 다소 엉뚱한(?) 상상이었다
그러나 시집을 넘기며 그 상상의 흔적은 지워지고 김필영 시인이 해설에서 짚었던 것처럼 바다 강 안개 등 물을 좋아하는지 산수가 좋은 곳에 사는 환경 탓인지 물에 관련된 단어들이 유독 눈에 띈다
그러나 물이 시인의 시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시간을 두고 관찰하기로 한다
세상에 가벼운 삶이 있긴 하였던가
" 이름 모를 들꽃이 되기 위하여 / 모진 눈보라 속에서 신음 소리 한 번 뱉어낸 적 없다." 는 초행의 일갈이 뼈에 얹힌다
세상을 향해 웃기위하여 얼마나 많은 눈물을 숨어 흘렸던가
한 편의 마음 조각을 제자리에 놓기 위하여 시인은 자신의 몸을 뒤집었을 것이고 다시 비틀었을 것이다
"꽃은 저 홀로 피어나려고 수없이 바람의 발자국에 짓밟혔을 것이다
무수히 상처로 얼룩진 그 자리에서 꽃눈은 깨어났을 것이다" ['혼자 있다는 것은' 부분]
시집의 행간을 꼭꼭 씹어 소화시키는 일은 오래 걸릴 일이지만 시인은 슬픔의 맛을 알고 깊이를 알고, 물의 이면과 물의 깊이에 대하여 녹록하지 않은 공력을 가지고 있겠다
"두려움이 앞서는 사랑 이라면 / 그건 사랑이 아니라 체면인 것이다" "무모하면 어떻고 / 무리하면 어떠냐" [ '내 사랑의 프리즘' 부분] 는 격한 사랑론이 유난히 눈에 걸리는 날이다
밖은 화창하고 나는 안에 있다
"저 홀로 뜨거워지는 모든 것들은
꽃보다 먼저 제 몸에 불을 붙이고
저승길을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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