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슬시집 '사타구니가 가렵다'를 읽으며 ....
2015년 말 울산 동행 시문학 콘서트에 참여했다가 뒷좌석에서 불쑥 내미는 시집 한 권을 받아들었었다.
무엇이 그리 바빴는지, 작고 부드러워 보이나 당당하고 열정이 느껴지는 시인과 꼭 닮은 시집을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해를 넘기고야 겨우 마지막 장을 넘겼다.
넘기고서도 다시 접어둔 페이지를 자꾸 들춘다.
애써 내가 모른척 했던 부분들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지금 "전달만 있고 소통은 사라진 대역"(시 '대역' 중에서)만 있는 세상에서 시인은 "...살아남는 / 길은 / ... 변종이란 소릴 듣든지 / ... 삶의 인화지 속에서 변종을 찾아내"(시 '변종' 중에서) 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자기를 포기했거나 자기만 있는 이 땅의 여러 문제점을 제목에서 암시했듯 긁고있다.
대한민국에서는 평생(?) 버릴 수 없게 된 참여라는 시 영역에 들어선 이후 나는 서정시의 세계를 완전히 떠났었다. 이제야 겨우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직설적이고 공격적이던 날을 감추고 있는데, 정소슬 시인의 시는 서정성을 내려놓지 않으면서도 예의 그 부드러운 날카로움을 밑그림처럼 깔고 있다.
시집 중간에 자리잡은 두 편의 시를 감상해 보자.
박치 拍癡
나는 음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박자를 제대로 못 맞추는
박치라고들 하는데
박치과 원장 친구놈이
글쎄 이런다, 자넨 들쭉날쭉한 구강구조가
엇박자의 원흉이라고
그래서 내 구불구불한 강줄기에
못줄 퉁겨
쇠 그물 엮고 콘크리트 쳐서
엇박자 물소리 모두
한 목소리로 고쳐놓으려나 본데
이보게 친구, 덧니 옹니 시냇물의
들쭉날쭉한 노랫소리 사라지고 나면
그 속에 살던 물고기도
그 위를 날던 새도
죄 도망치고 만다는 걸 몰라서 그러나
내 나이
보나 마나
듣는 둥 마는 둥
눈과 귀가 두 개씩인 까닭에
이제 조금은 알 듯도 한데
먼 곳은 멀어서 안 보이고
징징대는 헛소리들에 이명마저 나타나
들어도 모르고 안 들어도 모르고
눈은 눈대로 귀는 귀대로
덜미 벗어날 핑계를 찾았으니
나도 이제
더없이 편리한 나이쯤 된 거다
여의도 난장亂場에 출전할 나이쯤 된 거다
굳이 해석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정도로 하고싶은 말을 술술 풀어내고 있다.
대한민국의 자연을 콘크리트로 뒤덮은 역사적인 사건들 외에도 작은 하천들까지 얼마나 많은 물길이 직선화 되었던가.
내 구불구불한 강줄기는 나만의 것도 아니고 이 세대의 것만은 더더욱 아닐진데.....
또한 권력을 나눠가지고 그 권력으로 쌓은 부와 부패가 기억되지 않는 몰염치와 몰상식으로 소리 높은 국회인들 시인의 시선과 관심을 어찌 벗어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가 이렇게 노래할 수 있는 그만의 근거와 힘의 원천은 역시 뿌리,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번창하는 나무'라는 시에서 확인해 주고 있다.
"...... / 나무의 우듬지는 그저 과장된 검불일 뿐이고 / 밑동이야말로 투박하고 둔해 보일지언정 / 그런 나무일수록 뿌리가 깊다 / 그런 나무일수록 번창하는 법이다" 라고.
모든 것이 정상인듯 보이지만 많은 것이 비정상을 주춧돌로 삼고 있는 이 땅에서 결코 잊지 않아야 될 것들을 시인은 쉬임없이 외쳐대고 있음을 감사한다.
정소슬 시집 '사타구니가 가렵다' 도서출판 푸른고래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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