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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시론, 기타

황희순 시집 '미끼'

by 文喆洙 2016. 1. 1.

 

손버릇

 

   황희순

 

 

 

술만 마시면 무엇이던 가방에 넣는 버릇 있다 조약돌이나 씨앗이나 먹다 남긴 소주나 땅콩이나 맘에 드는 사람이나

하여 내 가방은 사시사철 부엉이집이다 어지러운 가방 정리하다 보면 물컹 썩어있는 건 언제나 사람

사람은 본체만체해야지 후회하면서 그 버릇 놓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가방에서 슬슬 냄새 풍기는 사람 있으니

[황희순 시집 '미끼'(종려나무) 중에서]

 

 

누군가의 시를 읽으면서 그 시 속에 잠긴 슬픔의 변주곡을 나는 듣지 않으려 애쓴다

이미 나도 슬플만큼 슬퍼봤기 때문에 상투적인 그 슬픔이라는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거부반응 때문이라고 해도 상관 없다

헌데 미끼를 읽으면서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슬픔 -고통, 번민, 갈증, 통증, 아픔...등등-이라는 것을 제외하고 나면 시집 '미끼'에서 나를 시 속으로 끌고 들어 갈 남는 미끼는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쩔어있기 때문이다

 

위 시 '손버릇'은 화자에게 있어 그 슬픔의 뿌리가 무엇이었는지 서문처럼 던져놓고 있다

 

 

처음 만난 사람이 새끼손가락을 떼어갔다 다음 사람이 귀를 떼어갔다 다음은 입을 떼어갔다 눈을 떼어갔다 코를 떼어갔다 다음은 팔을 다리를 떼어갔다 잔머리 굴린다며 머리를 떼어갔다 그 다음 사람이 달걀귀신처럼 둥그러진 여자를 버렸다 버려진 여자는 아무데나 굴러다니며 한자리에 머물지 못했다 굴러다니다 만난 또 한 사람이 아직도 몸이 따뜻하다며 가슴을 열고 심장을 떼어갔다 이제 어디에 부려놓아도 깨질 일 없는 여자는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 ['미끼' 전문]

 

엄경희 교수는 해설에서 "존재의 비참은 그 다음부터 시작된다. 추하게 훼손된 기괴한 여자의 몸은 세상으로부터 버림 받는다. 그리고 그녀는 아무데나 굴러다닌다.(중략)  그러나 이 시에  드러나는 참혹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화자는 '굴러다니다  만난 또 한 사람이 아직도 몸이 따뜻하다며 가슴을 열고 심장을 떼어갔다'라고 진술한다. 상실은  세상  밖으로 뻗어  있는 몸의 돌기를 넘어서  몸의 내부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라고 적었다

 그러나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꽃밭에서'라는 시에서 "이제 나만 먹어치우면 된다"고 현재의 모든 시간을 정지시키려는지  이미 준비를 끝내고 있다

 

"모처럼 찾아온 사랑이 몸에 박힌 못을 한 개씩 빼주었다. (중략) 꽃이 지기도 전에 못을 빼주던 사랑이 어느 날 못이 되었다. 살을 파고드는 못을 뼛속 깊이 박았다. 아무도 뺄 수 없게, 탕·탕·탕. 서랍에 넣어두었던 못도 꺼내 꿈이 고였던 자리에 박았다. 가볍던 몸이 다시 무거워졌다. 이제 되었다. 아플 수 있겠다." -['못을 박다' 부분]는 것 정도는 아마도 손가락을 떼어갔을 시기인듯 하다.

 

살아있어도 텅텅 빈 것['빈칸' 부분]이라고 독백하는 것을 보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일텐데 시집에서는 마른 눈물이 버즘처럼 번지는 것이 느껴진다...

 

갈대는 죽어서도 살아 시선을 잡아 끄는 마력이 있다

이시간, 간만에 다온사랑방에 차분히 앉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