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유목민의 시계
나호열
하늘이 어둠의 이불을 걷어 내면 아침이고
멍에가 없는 소와 야크가 마른기침을 토해 내면
겨울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
식솔만큼의 밥그릇과 천막 한 채를 거둬들이면
그때가 저녁이다
인생을 모르는 사람들은 유목민이라 부르지만
그들은 멀리 떠나 본 적이 없다
소와 야크의 양식인 풀이 있는 곳
그곳이 그들의 집이고 무덤일 뿐
그들에게 그리움이란 단어는 없다
언제 다시 만날까 그들에게 묻지 마라
앞서 떠난 가족들 설산 위에 별로 빛날 때까지
바람의 숨소리를 듣고
해의 기울기에 온몸을 맡기는
그들에게 시계는
물음표를 닮은 커다란 귀와
하늘에 가닿는 눈이다
시집 <촉도蜀道> 시왁시학. 2015
작품해설에서 정유화 시인은 "그렇다면 나호열 시인은 왜 이러한 심리적 공간에 서 있고자 했을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 온 모든 삶, 곧 시적으로 이뤄진 모든 삶이 가식이었고, 거짓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동안 해 온 모든 말들이 '달콤한' 맛으로 꾸며진 '거짓말'이었다는 것, 또 그러한 '거짓말'로 '가득했던 책'을 써왔다는 것을 고백하는 시인의 진솔한 언술이 이를 예증한다. 따라서 거짓말을 한 몸, 그러한 몸으로 살아온 생, 그러한 생으로 쓴 책들은 모두 버려야 할 소산" 이라고 말한다
비웠다고 버렸다고 지껄이던 혀가 그리움까지 버렸다고 다시한번 지껄이더라도 그것은 "바람의 소리를 듣고 / 해의 기울기에 온몸을 맡기"지 못하는 한 그 또한 거짓을 넘어 독자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 것이다라는 생각에 도달하니 내 사기 흔적에 덮게를 덮고 싶다
어머니를 보내며 꾹꾹 눌렀던 눈물을 주변이 조용해진 구석에서 훔친 적 있으니....
넘치게 담을 일 아니다
억지로 구겨넣을 일 아니다
시적으로 보이기 위한 모든 삶, 그건 시적일뿐 시는 아니니 ....ㅠ
수상하는 날 축하의 말씀을 드리지 못하고 이 자리를 빌어 '충남시인협회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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