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의 속뜻
오랜만이다 라는 건
처음 뵙겠습니다 보다 잔인하다
십수 년을 보고도 간만이라는 것은
잎을 떨궈내고도 덤덤한 나무처럼
새로운 것을 위하여 다시
잊을 수 있다는 것
2015. 1. 30. 19:00 경
시공동인 모임에서 .... 나눈 인사를 떠올리다
'시공'이 한 때는 떠들썩한 집안이었다 하더라도 지금은 세간살이마저 내보낸 빈집
부활 한다는 건 태어나는 것보다 어려운 법이지만 작년부터 그 빈집을 수리하기 시작했다
다만 공백기를 딛고 다시 라고 외치는 일은 속울음으로 삭혀야 한다
십 년 쯤 전에 자궁에 근종이 생겨 적출수술을 받아서 자기는 지금 '빈궁'이라며 너스레를 떠는 이, 그동안 한번 더 승진을 하였다는 이, 새롭게 시공부를 하고 있다는 이 등등 2차로 안산 중앙다방에 모여 자작 시 낭송을 하는데 나름 치열하게 보낸 흔적들이 느껴진다
다시 2월 14일이 다가온다
1기 동인이었던 고 고행숙 시인의 기일엔 거제도를 다녀와야겠다
당시 사건의 재판장 김재환 부장판사는 고시인의 시를 판결문에 삽입하여 낭독하므로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었다
재판부가 제시한 시 '확인되지 않는 하루'를 소개한다
확인되지 않는 하루
고행숙
확인되지 않는 하루가
수축인 불명으로 찍혀
자꾸 문을 두드린다
비늘을 겹겹이 둘러입고
물고기처럼 위장하여
죽은 듯 호흡을 멈추어도
따돌릴 수 없어
받아 쥐고 말았다
꼼짝없이 저당잡힌 내가
무거운 깃털 하나 꽂은 채
닳고 닳은 세상에 이끼로 피면
수취인 불명으로 날아든 너는
세월의 끝에 섞여갈 수 있겠지만
그럴 수 없다 나 또한
살아있음의 확인이 절실하기에
비늘을 벗어 네게 덤으로 얹어줄께
가라
영원히 잊힐 세상 밖으로
[유고시집 '달빛을 건너간 새 중'에서]